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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원문>

진행 한주엽 디일렉 대표

출연 경종민 KAIST 명예교수 | 반도체공학회 고문

-안녕하십니까 디일렉 한주엽입니다. 저희 디일렉은 한국 반도체공학회와 공동으로 반도체 미래를 그리다라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산업의 핵심이자 중추인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미래 성장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오늘 그 두 번째 시간인데요. 경종민 카이스트 명예 교수님 모셨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요즘 대전에 가서 주중에 시간 보내고 주말에는 서울에 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 스마트IT 융합시스템 연구단장은 지금 계속하고 계신 거죠? 그거는 언제부터 했던 겁니까?

“그건 이제 2011년에 정부 사업 시작하면서 법인으로 설립이 됐는데 작년까지 정부 사업비로 사업을 쭉 해 오다가 법인이기 때문에 지금 그동안에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창업한 기업들 도와주고 그런 일들을 쭉 하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서울대에서 전자공학과 졸업하시고 카이스트에서 석·박사를 그쪽에서 하셨죠?

“그렇죠”

-그게 어떻게 보면 1기입니까?

“서울공대 전자과는 제가 75년도에 졸업하고 카이스트 석사는 3기로 졸업했는데 박사 과정은 1호로 들어갔어요”

-1호입니까?

“왜냐하면 1~2회 선배님들은 카이스트 전자과에서 박사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래서 저희 때부터 받았습니다”

-그렇습니까 미국 밸랩(Bell Lab)에서도 근무한 이력이 있으시던데요?

“밸랩(Bell Lab)에서 이제 81년도부터 83년 2월까지 머레이 힐에서 Postdoc(박사후연구원)을 했죠”

-Postdoc(박사후연구원)을, 지금 그러면 박사 하시고 바로?

“그렇죠”

-미국에서 2년 정도 계시다가 카이스트는 언제가 83년도에 가신 겁니까?

“83년 2월에 왔습니다”

-전기전자공학부.

“그렇죠. 조교수로”

-83년도부터. 전기전자공학부는 그전에도 계속 있었던 건데 교수님은 오셨고. 한국 반도체 산업으로 보면 교수님이 학계에서는 거의 1세대라고 표현합니까? 죄송합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거의 뭐 그런 비슷한”

-저희가 표현하기로는 이 반도체 업계 학계의 어떤 ‘구루(GURU)’. 굉장히 산업 발전에 기여를 많이 하신 학계의 연구자이신 걸로. 제 평가라기보다 다른 언론에 나온 평가들이 이제 그렇게 평가가 되고 있는데. 원래 지금 반도체 쪽은 설계 쪽이 전문이셨던 거예요?

“원래 제가 밸랩(Bell Lab)에 가서 그때 일한 거 그다음에 석사 박사 과정에서 일한 거는 피직스(PhysX). 그다음에 소자 그다음에 공정 그다음에 소자 모델링 그런 쪽으로 일을 했고요. 그런데 한국에 83년도에 와서 무슨 일을 할까 생각을 하다 보니까 설계 쪽을 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CAD. 그때 이제 컴퓨터로 설계하는 거 그런 거를 열심히 이제 독학 비슷하게 공부해가면서 밤에 공부해가지고 아침에 학생들 가르치고 그런 식으로 설계 쪽으로 카이스트 와서는 했습니다”

-그때는 CAD 같은 거로 이렇게 했나 보죠? 지금은 무슨 EDA툴 이런 거로 설계하지 않나요?

“EDA툴을 이제 커머셜한 것들을 갖다가 그걸 이용해서 설계하는 것도 했고. 그런 EDA툴을 만드는 것도 했고 초창기에는”

-그때는 만들어서 쓰고 그렇게 했나 보죠?

“그러니까 CAD 알고리즘이라고 그랬는데요. 그래서 소위 요새는 이제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게 AI로 완전히 그냥 덮어져 버려 가지고 고전적인 알고리즘을 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알고리즘을 공부하면서 그래프 이론이라든가 이런 걸 공부하면서 그걸 이용해서 회로를 설계하고 검증하고 하는 연구를 한참 했습니다”

-83년도부터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의 주 교수님으로 계셨으면 교수님 제자분들도 굉장히 많겠네요?

“100명이 훌쩍 넘죠”

-실제로 지금 산업계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도 꽤 있으시겠어요.

“그뿐만이 아니고 은퇴한 사람들도 많죠”

-그렇습니까?

“제자 중에서 저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한 대여섯 살 차이 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분들은 삼성에서 사장, 부사장 하다가 은퇴해서 같이 늙어 갑니다”

-그렇죠. 교수님께서 제가 과거 이력들을 쭉 보니까 마이크로 프로세서도 90년대에 연구하고 개발도 하셨던 것으로 나오던데 이건 어떤 내용입니까?

“제가 그때 이제 아까 CAD 알고리즘 연구를 했다고 그랬잖아요. 처음에 공부하니까 그게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가지고 CAD 툴도 만들고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이제 레이아웃을 하는 게 나오는데 거기에 컴퓨터 그래픽스가 좀 들어가요. 그래서 그런 거를 재밌게 연구를 했어요. 근데 너무 일찍 그 연구를 해가지고 그거 가지고 학위 받은 사람들이 졸업해서 그 분야로 일할 자리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분야면 많이 있죠.

“지금은 그래픽스 하면 인기 짱이죠. 그래서 그러다가 그래픽스가 워낙 계산량이 많다. 보니까 하드웨어 엑셀러레이터를 설계를 하고 그 당시에 이제 그거를 소위 ASIC(주문형 반도체)로 만들어보고 그런 일들을 재미나게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ASIC(주문형 반도체)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그래서 인텔이 정말 독보적인 그런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던 프로세서 그쪽을 좀 해보자. 그 당시에 또 RISC(IBM이 발표한 명령어집합)가 이렇게 뜨고 있을 때예요. 그래서 리스크는 칩을 만들기는 되게 쉬워요. 근데 그 컴파일러를 만드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칩을 만드는 거를 한번 해보고 컴파일러도 한번 해보자 그래서 좀 무리스러웠지만 그때 제가 정부에서 386 칩셋 과제가 공고가 났었는데”

-386 칩셋이라고 하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CPU 같은 거 말씀하시죠?

“CPU 말고 주변 칩을 만들려고 그런 건데 제가 간도 크게 프로세서를 만들겠다. CPU 그리고 그 CPU가 어려울 텐데 그거 할 수 있냐? 그거 진짜 뭘 가지고 성공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제가 그냥 무식하게 그냥 인텔 386 칩 뽑아버리고 우리 칩을 푹 뽑아가지고 세상에 있는 소프트웨어 다 돌리겠다. 그렇게 되면 성공이고 그게 안 되면 실패다. 그렇게 심사위원들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배수진을 치고 일을 하면은 위험해서 그래서 연구라는 게 뭐 하여튼 최대한 해보는 데까지 해보겠다. 그래서 제가 이제 기한은 그게 예정보다 한 1년 반 정도 더 걸렸습니다”

-몇 년도에 시작했습니까?

“그게 이제 92년도에 시작했나 그래요. 근데 97년도에 완전히 성공한 게 나왔어요”

-아 그래요?

“그러니까 4년 과제였는데 5년 만에 그야말로 인텔 주기판 보드에서 인텔 386, 387 칩 뽑고 우리가 만든 ‘HK386’ 칩을 꽂고 소프트웨어 다 돌렸어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하여튼 윈도우즈도 다 돌리고 스파이스까지 돌리고 소프트웨어 다 돌렸습니다. 그때 엄청난 일을 한 건데 저는 그거가 좀 상업적으로 연결을 못 한 것에 대해서 제가 나중에 작년에 이제 창업가라는 책을 쓰면서 거기다가 이렇게 제가 고해성사 비슷하게 했는데. 정말 제가 미숙해서 그런 위대한 연구 결과 개발을 해놓은 우리 학생들 그다음에 현대전자의 연구원들”

-현대전자랑 같이 하셨던 겁니까?

“현대전자에서 이제 칩을 만들어 줬죠. 그리고 이제 백 엔드 해 주고 그리고 프론트 엔드 설계는 리스크의 경우에는 컴파일러 이런 거 전부 다 학생들이 했고 그러니까 그 당시 학생들에 노력의 결과를 좀 상업적으로 성공을 시켰으면 돈도 벌고 신났을 텐데 너무 제가 이제 그런 쪽에 미숙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걸 못했어요. 근데 386 칩을 만드는데 386 칩의 동작 모드가 도스 돌리는 게 있고 윈도우즈를 돌리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윈도우즈를 돌리려고 그러면 버추얼 메모리를 써야 돼요. 그러면 그게 이제 프로텍티드 모드라고 하는 걸 돌려야 되는데 거기에 버추얼 메모리에 메모리 매니지먼트하는 인스트럭션들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게 굉장히 복잡합니다. 페이지 테이블 컨트롤하고 몇 가지 인스트럭션에 대한 마이크로 코드를 만드는 부분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그걸 우리 학생들이 했어요. 정말 천재 같은 학생들이에요. 우리 카이스트에 지금 이제 박인철 교수라든가 그때 같이 일했던 전산과 학생들하고 이런 사람들의 실력이 정말 그다음에 열정 이런 게 엄청났던 거죠”

-그게 연구 결과로는 다 돌아가고 뭔가 성능도 더 괜찮았습니까? 어떻습니까?

“완벽하게 돌아갔다니까요. 그래서 그야말로 인텔과의 법적인 문제 이런 것만 내가 대응할 자신이 있었으면 판을 크게 걸려서 걸어서 했어야지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AMD 같은 회사가 생겼을 수도 있고.

“그렇죠”

-x86 호환 CPU를 만드는 회사가 됐을 수도 있는데 상업화까지는 가지 못했던 게 있군요.

“제가 창업가라는 책에다 그걸 조금 소상하게 써놨어요. 너무 좀 미안해가지고”

-그 과제 시작하시고 나서 얼마 안 있어서 지금도 있는 IDEC(반도체설계교육센터)도 교수님이 또 만드셨죠?

“그때 마침 정부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우리나라 석유 비축 자금 그게 좀 여유가 있어서 이거를 국가의 인프라 만드는 데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전자 부품 쪽에서도 좀 아이디어를 내면 좋겠다. 그래서 제가 이제 불쑥한 얘기가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을 해야 된다” 그래서 “인력 양성하는 게 무슨 인프라냐?” 그래서 아니 앞으로는 설계가 되게 중요해지고 시스템 반도체가 되게 중요해지는데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게 인력이다. 그래서 그 인력을 양성하는 시스템이 인프라다 그렇게 우겼어요. 거의 우겼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그걸 받아들여서 시작을 하게 됐죠”

-거기서 교육생들 많이 배출됐죠?

“많이 배출했죠”

-그게 실제로도 제가 팹리스라든지 이런 설계회사들 다녀보면 회사들 쪽에서도 오는 인력들은 학교에서 학생들도 많이 오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 인력 부족에 굉장히 심각하지만 그래도 그마저도 없었다면 참 정말 어렵지 않았을까라는.

“제가 그때 이제 반도체 칩을 설계하려고 그러면 소프트웨어가 절대적인데 그게 대부분 미국 회사들이거든요. 그래서 미국 회사들을 좀 설득하느라고 이게 학생들이 너희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트레이닝을 받아야 회사에 들어가서 진짜 칩을 설계할 적에 너희 툴을 쓰게 된다. 돈은 그때 받아라 비싼 돈. 우리한테는 우리 지금 돈 없으니까 거의 공짜로 줘라 그래서 그것이 서로 합의가 돼서 저희가 정말 적은 예산 가지고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그다음에 모든 거의 모든 대학에다가 워크스테이션 PC를 다 주고 소프트웨어 다 깔아주고 그 다음에 그거 가지고 칩을 설계하면 삼성, 현대 이런 데서 칩을 거의 공짜로 만들어주는 시스템까지 만들었어요. 그래서 삼성이나 현대에도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대학교 다닐 적에 설계를 해서 걔네들이 별 실수를 다 할 텐데 걔네들이 너희 회사 입사한 다음에 그런 삽질 하면 비싼 월급 받으면서 낭비가 크다. 그러니까 대학교 있을 적에 삽질하는 거 다 끝내고 너네 회사 들어오게 하면 그만큼 이익이다. 그래서 그것도 이제 얘기가 돼서 말하자면 그런 인력 양성 인프라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게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에 제주도에 있는 대학까지 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90년대에.

“95년도”

-95년도에 IDEC(반도체설계교육센터)도 이렇게 해서 뭔가 인력 양성의 기반도 교수님께서 좀 기여를 많이 하셨고 또 그 전에 물론 또 연구는 그 후에 끝났지만,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어쨌든 한국에서도 만들어 온, 결국은 또 연구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또 많이 전파가 됐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교수 시절 포함해서 반도체 산업계에 지금 한 40년 정도 몸을 담으셨는데 반도체 학계에. 지금 어떻습니까? 메모리를 제외한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역량에 대해서 교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하는 게 뭐냐 하면요. 목표가 정해지면 달라붙어서 단순 간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는 거 그거 전 세계 거의 1등입니다. 목표가 보이는 것에 대해서 그런데 이제 메모리에 비해서 시스템 반도체는 이게 저변 기술부터 그다음에 시장에 파고 들어가서 돈을 벌 때까지 파이프라인이 굉장히 길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여기에 학생들이 미리부터 이런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아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플랫폼을 제대로 만들어가면서 교육을 하고 그래야지 우리가 어떤 예를 들어서 무슨 학생들이 석박사 졸업을 할 적에 논문 몇 편 퍼블리시 하면 졸업한다. 교수들도 어디 어디에 몇 편 하면 승진한다. 이런 스펙 가지고 사람들을 드라이브를 하면 그런 큰 나무가 자라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진짜 구글이나 애플이나 이런 수준의 글로벌 회사들이 나오게 하려면 우리가 조금 더 평가하기 쉬운 그런 지표가 아니고 정말 세계 톱들이 인정해 주는 그런 실적을 향해서 지치지 않고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조금만 스펙을 만족했다고 그러면 스타가 되고 우리나라 안에서 골목대장처럼 만세 부르고 이렇게 하고 그러면 학생들도 그거를 보고 웬만큼 하면 더 안 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에 보이는 목표를 빨리 달성하는 건 한국 사람들이 잘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 이상에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이상 더 높은 곳까지 갈 수 있는 그런 비전과 그런 것들을 계속 북돋아 주는 그런 분위기 작은 성공에 도취하지 않고 더 큰 것으로 격려해서 그렇게 그런 시스템을 우리가 지금 좀 만들어야지 되지 않나”

-교수님이 2004년에 이공계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도 내셨고 제가 미리 질문 준비하기로는 이공계 인력 양성은 현시점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까? 라고 여쭤보려고 질문지는 미리 써놨는데. 이공계가 아니고 반도체 쪽으로 좀 이렇게 특히 설계 쪽으로 좀 다시 한정해서 좀 보자면 어떻습니까? 지금 실제로 그쪽 분야에서 졸업하는 친구들이 좀 있습니까? 많이 늘었습니까? 줄었습니까? 어떻습니까? 아니면 현 상태 유지입니까?

“많이 줄었죠. 왜냐하면 반도체 설계 자체가 이제 요새 AI나 빅데이터나 이런 거에 비해서 아웃풋을 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되니까. AI는 구글이나 이런 데서 제공해 주는 소프트웨어 가지고 조금만 이렇게 하고 그러면 일단 뭐가 나오지 않습니까. 근데 반도체는 거기에 비하면 파이프라인이 길거든요. 그리고 이제 대학에서 교수나 학생들이 그런 스펙 중심으로 이렇게 하다 보니까 큰 그런 깊은 세계적인 그런 수준의 기술을 이끌고 가질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성장하기가 힘든 거예요. 그래서 숫자도 문제지만 숫자는 사실은 우리나라 옛날에 비해서 줄어들었고 중국에 비하면 10분의 1, 20분의 1, 3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질이거든요. 그래서 국제적인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숫자가 적더라도 키워낼 수 있는 그런 인프라가 우리 안에 기능을 하고 있는가.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거든요. 그게 희망이 앞에 가는 사람들이 희망의 깃발을 보여줘야 뒤에서 이렇게 가는 건데 반도체 설계는 어떻게 보면 잘 보이지 않고 AI나 이런 거 요새 그냥 이것도 이제 상황이 시대가 좀 바뀔 겁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이렇게 동네 축구하듯이 왔다 갔다 하면 안 되거든요”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할 때는 지금 지금도 AI 이런 쪽으로 왔지만, 그전에는 또 바이오가 엄청 또 했고 그전에 나노 다른 쪽 그래서 정부 지원 같은 게 제가 볼 때는 교수님 90년대 이럴 때 이제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하고 이런 설계 지원센터 이런 거 할 때와 비교했을 때는 근래에 들어서는 반도체에 대한 지원은 많이 줄어든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줄어들었죠”

-실제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반도체는 삼성이 하는 거로 돼 있고 SK하이닉스가 하는 거로 돼 있지 대학이 할 일은 별로 없는 걸로 돼 있거든요. 정부에서 대학은 그냥 로우머티어리얼 그냥 학위만 있는 학생만 보내주면 우리가 다 알아서 한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생각이 SK하이닉스는 좀 덜할지 모르겠는데 삼성은 그런 것 같습니다. 대학의 그런 기능 같은 것들이 살아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대학 자체도 좀 목표를 높이 잡고 길게 보면서 정말 임팩트가 있는 그런 연구를 하고 그런 사람들을 키워낼 생각을 해야지 되고 그다음에 우리나라의 삼성이 물론 잘하지만, 삼성이 혼자 잘해서는 안 돼요. 우리나라의 산업의 생태계뿐만이 아니고 이런 인력 양성하고 R&D하고 전체를 아우르는 그런 에코 시스템이 살아나야 삼성도 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너무 삼성 온리 식으로 생각하는 거는 그거는 길게 보면 그거는 옳지 않다”

-그거는 정부…

“정부도 연말이 되면 삼성만 보고 있어요. 삼성에서 반도체 수출을 얼마나 했느냐. 그런 그게 결국 수출 이런 거 그러니까 너무 단기적인 목표 그런 거에만 이렇게 하다 보니까 삼성만 해도 임원 인사를 매년 연말마다 하잖아요. 그러니까 임시 직원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임원이. 그러니까 장기적인 어떤 프로젝트를 꿋꿋하게 이렇게 밀고 갈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안 돼 있어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눈에 보이는 목표를 짧은 시간 안에 달성하는 것 중심으로 나라가 굴러가고 있는 거예요”

-기업도 뭐 전문 경영인들은 단기 실적을 많이 중시하죠.

“똑같습니다. 정치인들도 그렇고 공무원들도 그렇고 그러면은 롱텀으로 그런 일 하는 걸 누가해요? 국가연구소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나 이런 데서 그런 깊이 있는 그런 거를 합니까? 요새는 뭐 기초과학연구원(IBS) 같은 데서 조금, 근데 거기는 너무 또 순수 연구한다고 산업체하고 전혀 관계없는 그래서 이게 국가 전체를 꿰뚫고 있는 대동맥 같은 롱 파이프라인이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해요. 대만은 그게 돼 있는 거예요”

-아 그래요?

“대만은 전국에 있는 대학들이요. ITRI(산업기술연구소)에서 지원해 주는 대만의 우리 IDEC(반도체설계교육센터)과 같은 기관 그다음에 ITRI(산업기술연구소)가 대만의 국민소득의 20%를 ITRI(산업기술연구소)가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ITRI(산업기술연구소)가 우리나라 카이스트 같은 기관인데. 카이스트는 아마 1%도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대만은요. 우리나라 대덕연구단지 같은 거를 신주(Hsinchu)에 만들었는데 거기는 이제 과학 중심의 사이언스 베이스드 인더스트리얼 파크에요. 그리고 거기는 연구소들만 모아놓지 않았어요. 연구소가 있으면 그 옆에 학교가 있고 연구소가 있으면 그 옆에 인더스트리가 있고 인더스트리가 있으면 그 옆에서 생활환경 근린시설 같은 것들을 전부 다 한 파크 안에 다 만들어 놨어요. 그러니까 그게 엄청나게 성공을 한 겁니다. 그 신주에서 TSMC가 나온 거예요. TSMC의 비전은 우리나라의 삼성에서 지금 파운드리를 한다고 그러는데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파운드리라도 거기는 그야말로 생태계를 아우르는 그런 거예요. 삼성은 지금 큰 커스터머를 몇 개를 따오느냐 뺏기느냐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모델이 되고 그러니까 그런 시스템하고 반도체하고 이렇게 지금 하나로 돼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이게 그야말로 크게 보고 멀리 보고 하지 않으면 플레이를 할 수 없는 게임이 돼버린 거예요. 심지어는 이과적인 마인드만 가지고서는 이게 되지 않습니다. 왜 애를 안 낳아요. 교육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기 전에 키울 애가 있어야지.

-지금 한국도 출산율이 엄청 떨어져 있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모든 문제들을 정치나 산업이나 이런 데는 큰 그림에서 봐줘야지 되는 거고 그래서 저는 대기업만 하더라도 그런 소셜, 사회에 기여하고 이러는 것이 정말 그런 통섭적인 그런 관점에서 그런 문화를 풍겨줘야 돼요. 그런데 그것들이 우리나라가 얼마나 그게 급히 오느라고 굉장히 척박하게 왔거든요”

-급하게 왔죠.

“잘 아시잖아요. IMF 있을 적에 이공계 사람들 먼저 잘라버리고 대우에서는 기술은 사 오면 된다. 탱크주의. 그다음에 LG에서도 기술은 사 오면 된다. 그 결과 전부 다 기본이 되는 인프라들이 죽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좀 더 길게 보고 어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능력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끝까지 조로하지 않고 끝까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정말 늙어서 기운이 다 빠질 때까지 달려갈 수 있는,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연구했잖아요. 그런 특수한 경우지만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뭐 스타 과학자에서 타이틀을 만들어주고 이렇게 해서 우쭐하고 그러는 수준을 벗어나서 정말 우리나라의 사실 작은 나라 아닙니까. 우리가 인력 양성 숫자를 아무리 키워도 중국의 30분의 1이 되기도 힘든데 저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숫자는 숫자로 컨트롤 되는 게 아니고 비전을 보여줬을 적에 질이 좋은 사람들이 비전을 보여줄 적에 숫자는 따라오는 거다. 그래서 이거는 정말 총괄적인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교수님 창업가라는 책 아까 말씀해 주셨는데 책에 이제 아까 여러 가지 말씀이 담겨 있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대한민국의 창업 생태계 반도체 쪽만 좀 보자면 어떻게 보십니까? 조금 최근에 좀 많이 활성화가 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창업 생태계가요. 무시무시하죠. 그리고 너무 정부 의존적이에요. 창업 생태계에서 중요한 것 중의 나가 펀드인데. 펀드 정부의 모태펀드가 거의 모든 것을 다 좌지우지합니다. 그리고 모태펀드를 받은 VC들이 실적에서 리스크테이킹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기술의 깊이를 알아보고 투자를 해야 되는데. 책잡히지 않을 투자만 하거든요. 모태펀드이다 보니까 그러니까 정부의 의존도가 너무 높다. 그리고 이런 돈들이 저는 인더스트리에서 이렇게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정부에서도 필요하겠지만 그래서 우선 펀드가 투자가 되는 기준. 이런 것들이 그 VC들에 의해서 너무 단기적인 치고 빠지는, 오늘 돈 집어넣으면 1년 후에 얼마로 돼서 엑시트 할 수 있는가 너무 이게 힘들고요”

-짧죠. 5년 펀드 해놓으면 5년 만에 다 회수해야 된다는 식으로 지금 가던데. 그 시간 안에 그렇게 회수하기는 쉽지 어렵지 않습니까?

“창업 생태계가 이제 대기업에 납품하는 것이 요새 갑을 이런 문제도 나왔지만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 것들이 서로 상호 공존하고 서로 도와주는 정말 그런 식으로 가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아직도 좀 많이 부족한 것 같고. 그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대학에서의 그런 연구들이 너무 그냥 논문 쓰고 학위 받고 하는 거로 끝나고 승진 받는 데까지 연구하고 그다음에 좀 나이 들고 그러면 자연히 그냥 도태돼버리는 거예요. 교수들도 나이 50~60세 넘어서 70세 넘어서도 힘차게 연구할 수 있는 그다음에 멀리 가려고 그러면 같이 가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실은 혁신이라고 하는 게 융합이라고 하는 거 하고 같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다른 분야에 있는 것들끼리 융합을 하면서 혁신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뼈를 깎는 그런 창의력과 상상력과 이런 것들로 해서 되는 건데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 그런 것들을 격려해 주는 분위기 그다음에 작은 성공에 도취하고 잘난 척하고 그냥 게을러지지 않게 하는 그런 분위기 그런 것들이 대학에서 만들어줘야 되거든요. 그럼 그런 것들을 진짜로 격려해주고 모니터링해 주는 대학이 있는가. 그다음에 국책 과제 같은 걸 할 적에 그런 것들을 평가하고 지원하고 그러는 과정 속에 그런 시스템들이 동작하고 있는가. 어떤 미리 이렇게 한 발 담가놓고 그거 가져가고 그다음에 그거 하면 그냥 보고서 내고 끝나고 학생들도 학위는 받지만 진짜 인더스트리에 가서 파급력 있는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학생들. 저는 옛날에 386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기네들이 만든 칩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가 돌아가는 거 보고 자기들이 놀라더라고 그러면서 애들이 완전히 자신감 충만 하는 거예요”

-그 경험이 굉장히 좋은 자산으로 남는 거죠.

“걔네들은 뭐든지 다 압니다. 그래서 저는 그걸로는 제가 논문 한 편도 못 썼어요. 제 이력서를 보면 그때 5년 동안 논문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만 마이크로 코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컴파일러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그런 돌고 안 돌고가 너무 명확한 그런 게임을 생존 게임을 했거든요”

-그러니까요. 논문 쓰고 그냥 보여주기식이 아니었고. 근데 그냥 지금의 어떤 평가 환경으로 보면 논문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평가됩니까?

“그렇죠. 논문 쓴 사람들이 일단 주장할 게 있으니까 사이언스(Science)와 네이처(Nature) 이런 데 논문이 있으면 점수를 많이 따고 들어가죠. 그리고 심사하러 온 사람들도 그거 기준으로 하게 되고. 그래서 저는 그 논문이라는 거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어요. 물론 좋은 저널의 논문을 싣는 건 어렵습니다. 겪어봐야 될 경험이죠.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아야 될 분야가 많거든요. 그러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것, 커스터머 지갑을 여는 그런 것들은 정말 혹독한 과정을 거치거든요. 그런 것들이 MIT나 스탠퍼드, 버클리 같은 데서는 교수들이 창업을 안 하면은 조금 이렇게 주눅이 들어요”

-그래요?

“프로브 해라 너의 기술이 좋다는 거를 그야말로 노벨상을 받고 뭐 그런 거는 또 모르겠습니다만 진짜 좋은 회사를 창업해가지고 인더스트리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러는 사람들이 진짜 일류죠. 교수만 그런 게 아니고 학생들도 졸업하면 우리나라처럼 저기 일류 대기업에 가는 게 1순위가 아니에요. 거기는 1순위는 창업하는 겁니다. 크림 학생들은 창업을 하고요. 1군. 2군이 교수로 가고 3군이 대기업으로 가는 겁니다”

-그래요?

“3군이 구글이나 애플로 가는 거예요”

-한국은 지금 1군이 다 대기업으로 가는 건가요?

“한국은 1군이 삼성으로 줄 서는 거죠”

-장가가려고 그렇다는데요?

“장가가려고 그래요. 그러니까 여자친구의 부모가 창업하고 있다 들으면 싫어해요”’

-그렇지 망할 수도 있는데 뭐 이러면서요. 그렇군요. 교수님도 창업을 여러 번 하신 거로 제가 얘기는 들었데…

“여러 번 했습니다. 여러 번 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하도록 독려했고 그렇습니다”

-지금 여러 번 창업했고 정리한 회사도 있고 지금 워킹 되는 회사도 있습니까?

“지금 워킹하는 회사가 이제 작년에 창업한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 회사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한번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근데 다시 또 창업 얘기로 돌아와 보면 요즘에 AI 반도체 만드는 어떤 회사 또 어떤 회사 같은 경우는 CEO가 해외 기업에도 근무했던 경험이 있고 또 국내 대기업에도 근무를 했던 분도 계시고 또 주변에 소위 말해서 그런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기업 출신의 좋은 스태프들이 많이 연구원들이 많이 붙어 있어서 대규모로 펀딩을 받아서 지금 회사를 매출은 없지만,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 그런 AI 쪽의 반도체 기업들도 몇몇 보도에도 많이 나오고 눈에 띄는 기업들이 있어요. 근데 성공하고 크게 성공하고 망해도 크게 망해 먹는 과거하고는 좀 많이 양상이 좀 달라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이제 저는 그 부분을 보는데 좀 제가 경험이, 그쪽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저는 이제 아까 말씀드린 긴 파이프라인에 상류에서 쭉 일을 해왔던 사람이어서 상류에서 일을 하면 어느 정도 그 결과에 대해서 확실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류로 가면 거기는 예측 불가능성들이 굉장히 커지거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경제학자들이 주식 시장에서 돈 다 잃는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질문을 저한테 하신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수백억~수천억씩 펀딩을 받는 그런 단계에 있는 회사들에 대해서는 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미 거기에는 이제 판돈이 커진 거죠”

-엄청 커졌죠.

“그러니까 판단하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저는 그쪽은 그야말로 복불복의 영역이고. 그거보다 우리가 정부나 이런 데서 컨트롤하고 처음에 힘들지만, 더 해줘야 할 영역은 상류 영역이다. 그래서 저는 좀 일관성 있게 제가 그리고 몸담아왔던 그런 영역인 상류에서 인력을 키우고 기본 기술을 개발하고 R&D를 할 적에 어떤 자세와 어떤 능력을 키우기 위한 그런 마음으로 해야지 되는가 그리고 정부에서의 그런 인프라나 대기업에서의 그런 같이 만들어가야 될 생태계가 그런 것들을 격려해 주는 방향으로 되면 하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을 것이다. 실패를 하면 또 하면 된다. 성공하면 공유해 주면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그 하나하나에 이거는 성공하고 이거는 실패한다 이런 거를 예단하는 것은 이미 저의 영역도 아니고 그거는 아마 많은 사람들의 판단 영역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그쪽은 그야말로 베팅하는 그런 단계인 것 같고 우리나라는 그것보다 그 전 단계의 플랫폼을 좀 더 공고하게 하는데 택스 머니라든가 우리 플랫폼을 만들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그것을 내가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그런 생각으로부터 우리가 좀 멀어지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그런 단계에 좀 몰입을 하자 그래야 저는 미래 세대에 희망을 우리가 줄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야 저는 출산율, 결혼율 이런 것들이 이공계 영역이 아니잖아요. 그건 우리 사회가, 그야말로 풍요한 사회가 비전이 있고 희망이 싹 트는 그런 사회가 돼야지 되는 거거든요. 저는 이공계에서 그런 쪽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 어떤 기본 기반 기술을 쭉 열심히 해가지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 사람들이 결국에 돈도 많이 벌고 사람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하고 노년이 풍요하고 나눠주고 행복한 그런 삶을 살 게 되더라. 저도 그렇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이 칠순인데 그렇게 선례를 만들고 싶어요”

-내년 칠순이신데 작년에 기업을 또 창업을 하셨고 대단하신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여쭤보면 아까 뭐 제자분들도 많으셨고 또 특히 카이스트 안에서는 또 벤처 창업도 많지 않습니까? 조금 눈여겨보신 사례가 혹시 있으시다면.

“재미있는 회사가 있는데요. 제 졸업생 중에 전자 현미경, 우리나라의 전자 현미경 1등과 2등을 하는 회사 CEO가 다 제 졸업생입니다”

-아 그래요?

“제가 전자 현미경하고 관계가 없죠. 근데 관계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제가 옛날에 통신용 반도체 칩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을 했어요. 파이온이라고 근데 그 회사가 회사 자체는 이제 지금은 없어졌는데 그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른 회사로 가고 그러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고 그래서 결국은 이제 소프트웨어 만들고 하드웨어 만들고 이러는 것이 굉장히 핵심 역할을 하는 전자 현미경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창업도 하고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상당히 좀 잘하고 있고”

-국내 회사인 거죠?

“둘 다 국내 회사죠. 우리나라에 1등, 2등의 회사라니까요. 탁상용 전자 회사”

-파크시스템스 이런 데입니까?

“거기는 원자 현미경이고. 그거는 이미 1조짜리 회사 그거보다는 좀 작은 급입니다. 그런 회사가 하나 있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제 우리 카이스트 교수가 하는 회사인데 이제 고속 트랜시버 반도체 칩 설계 기술을 가지고 그분이 창업을 한 네 개쯤 했어요. 그래서 제가 카이스트 교수님들한테 딴 데 보지 말고 그 교수를 좀 봐라 정말 너무 모범적인 케이스다”

-그 회사는 언제 창업한 회사입니까?

“그분이 그러니까 미국에서 창업을 한번, 자기 지도교수와 한번 했었고 그다음에 한국에 와서 카이스트 와서 세 번을 했어요. 세 번이 아니고 네 번을 했구나 그래서 그게 이제 IC 설계부터 최종 시스템까지 전체 다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서 자기 기반 기술의 경쟁력이 있는 거예요. 하이스피드 트랜시버 칩 설계 기술이 있으니까. 근데 그거를 어디다 쓰느냐 시장에서 킬러 앱이 어디 있냐 그거를 찾아가지고 그걸 하려고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또 부가 기술을 개발해야 되는 것들이 많아요. 그거를 다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이제 상품이 되는 거죠. 그래서 창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기반 기술의 핵심 경쟁력이 있어야 된다. 그다음에 그거 가지고 충분하지 않아요. 논문은 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창업에 성공하려고 그러면 시장에서의 디멘드. 그다음에 거기서 경쟁하고 있는 그 플레이어들. 거기에 내가 어떻게 들어갈 건가 하는 그런 전략을 가지고 거기에 필요한 그런 기술들을 만들어 가는 거죠. 그래서 그런 과정을 잘 거치고 있습니다”

-그 교수 창업하셨다는 그 카이스트 교수님 회사는 지금도 워킹이 되고 있습니까?

“지금 잘 나가고 있죠”

-아 그래요? 이름 얘기하면 그렇습니까?

“이름 얘기해도 되나요?”

-뭐 어떻습니까.

“우리 배현민 교수예요”

-배현민 교수님.

“제 생각에는 뭐 지금 제가 너무 빨리 얘기하면 또”

-알겠습니다. 그 정도만 관심 있으신 분들은 또 찾아보시겠죠. 교수 창업에 대해서 방금 성공 사례도 말씀해 주셨는데 근데 성공의 정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사실 또 바뀔 수도 있는 거니까. 금융업계에서는 교수 창업에 대해서 약간 뭐랄까요. 약간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저도 뭐 회사를 창업을 했지만, 교수 겸직을 이렇게 하셨을 때 뭔가 절박함이 조금 떨어지는 거 아니냐라는 거에 대한 얘기들이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거는 소위 요새 뭐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잖아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그러니까 교수가 낄 때는 신나게 끼어놓고 빠질 때 안 빠져주면, 예를 들어서 회사를 만들어 놓고 주식은 자기가 대부분 다 갖고 있으면서 책임은 하나도 안 지고 CEO도 안 하고 대주주로서 뒤에서 조정만 하고 대원군처럼 그리고 역할을 뭔가 해주지 않으면 누구나 다 싫어하죠. 회사가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역할 자기가 그야말로 자기가 회사에 기여하는 것만큼 주식이라든가 이런 권한 행사 같은 것을 잘 조절을 해서 하면 그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이제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같이 연구를 해가면서 그 연구의 결과가 실제 사회에서 어떻게 쓰인다. 그런 것까지 이렇게 같이 겪어가는 그런 게 실제 좋은 교육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리면 지금 반도체 분야 쪽에서 만약에 창업을 한다고 하면 교수님의 전문 분야는 설계. 물론 그전에 다른 것도 하셨지만 설계 쪽이시지만, 반도체 쪽이라고 하면 어디가 좀 창업하기 유망하다고 보십니까?

“그거는 역시 이제 어떤 주식을 사면 좋겠느냐라는 질문처럼 들려서 저는 이제 말하자면 세계 시장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큰 시스템 아닙니까? 그게 이렇게 압력이 모든 분야에 똑같이 작용하는 게 아니고 공기가 이렇게 돌거든요. 그러면 그때그때 이제 압력이 커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면 그 부분이 이제 시장이 크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은 말하자면 시장을 구성하는 많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있는 그런 시장의 세그먼트들에 의해서 바뀌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이렇게 주가 오르내리는 것처럼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시장을 잘 들여다보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어떻게 보완해서 어떻게 거기 들어갈 것인가. 이런 거를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가 굉장히 바람직한 그런 R&D 그다음에 교육 이런 거의 모델이기 때문에 대학이 그런 에코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편입이 되면 좋겠다. 인위적으로 혹은 로컬하게 우리나라 안에서만 통용되는 그런 인덱스 가지고 우리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한 것처럼 판단하고 그렇게 하지 말고 설령 틀릴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글로벌한 시장이 움직이는 방향 맞춰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기술이라든가 능력을 기여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 제대로 된 거고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교수님 오늘은 우리 반도체공학회하고의 기획 인터뷰로 나와서 조금 오버럴하게 발전 방향에 대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방향성, 특히 창업 그리고 인력 이런 쪽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다음번에는 교수님 회사 한번 좋은 소식이 있을 때 그때 한번 나와주셔서 한번 얘기 한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교수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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